2021.01.05
출처 -서울특별시도시재생지원센터(https://surc.or.kr/changes/525)
글 | 박예하
사진 | 이예린(일오스튜디오)

서울 도시재생기업(CRC), 해방촌 ⌜온지곤지 협동조합⌟ 앎과 배움으로 이루는 도시재생
해방촌 온지곤지 협동조합은 마을 사람들을 밀어주고 당겨주며 앎과 배움, 책과 글로 지역의 가치를 더하고자 하는 도시재생 기업이다. 이곳의 김현식 매니저를 만나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도시재생기업(CRC)_ ‘Community Regeneration Corporation’의 약자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법인)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생산, 공급하는 기업
온지곤지. 알 듯 말 듯 한 이름을 가진 책방에 철학과 문화를 넘나드는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중국 경전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온지’는 ‘온고지신(溫故知新)’, ‘곤지’는 ‘곤지면행(困知勉行)’이라는 한자성어를 줄인 것으로, 옛것을 잘 배우고 실천하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이름 그대로, 인문학과 글쓰기를 통해 지역의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온지곤지는 2015년 해방촌의 작은 책방으로 시작해 2018년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2019년 사회적기업가 육성과정에 참여하고 2020년 서울 도시재생기업(CRC)에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을 김현식 매니저는 ‘급물살’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필명 ‘기픈옹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하다는 김현식 매니저는 이곳을 지키는 책방지기이자 실무자다. 2007년 온지곤지의 전신인 인문학 연구공동체 ‘수유너머’가 해방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삶의 터전까지 옮겨와 해방촌의 변화를 고스란히 지켜봤다.
주민 이야기가 도시재생 소프트웨어로
인문학 강의와 독서 모임에 뿌리를 두었던 온지곤지가 최근 가장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주민을 대상으로 한 ‘책 만들기 프로젝트’다. 매주 한 번씩 모여 같이 글을 쓰고, 과정이 끝나면 그것을 책으로 엮어 출판하는 프로그램으로 2019년 하반기 첫 단추를 꿰었다. “처음엔 엄마들에게 글을 쓰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있으니 못 오시잖아요. 그래서 금요일 저녁마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글을 쓸 수 있게 각각 두 개의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10여 회에 걸쳐 진행된 프로그램 과정이 끝나고 엄마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 아이들이 신나게 동네를 탐방한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이 나왔다. “사실 엄마들에게 글 쓸 공간을 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지역에 있는 거점들을 둘러보며 지역을 이해하고 소속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궁극적으로 이 책들로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온지곤지의 목표다.
“5년간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면 그게 곧 소프트웨어가 되는 셈이잖아요? 그걸 책으로 엮어 해방촌의 많은 독립서점에서 판매할 수 있다면 지역 상품으로 자산을 만들어 지역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겁니다. 지역 주민이 직접 도시를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죠.”

김현식 매니저는 도시재생 사업에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을 고민하다
해방촌은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세차게 일어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시재생 사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견인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 김현식 매니저의 의견이지만, 온지곤지는 거꾸로 도시재생 활동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관광객에게 계속 시달리다 보니 그들의 접근을 제한하거나 지역에 일부러 생채기를 내기도 해요. 하지만 그걸 지속할 수는 없거든요. 다만 산에 가면 쓰레기를 가져와야 하듯이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의 생태를 존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 주민에 대한 관심 없이 TV에 나온 맛집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책을 통해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중요한 이유예요”
책 만들기뿐만 아니라 이들은 해방촌 도시재생센터에서 규약 사업을 위탁받아 진행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나기 전에 해방촌 주민협의체의 마을규약을 제정하는 사업이다. “강제성은 없지만,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나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선언, 혹은 약속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규약이 마무리되면 규약을 홍보하고, 관련된 캠페인 활동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온지곤지 협동조합은 ‘인문학과 글쓰기’라는 독특한 접근법으로 도시재생에 다가서고 있다.
자랑하는 나의 동네
‘동네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김현식 매니저의 생각 뒤에는 해방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다. 연구 공동체가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이주했다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살고 있는 이유를 묻자 ‘살기 좋아서’라는 간단한 대답이 금세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많아요. 보행로도 미비하고 교육이나 문화적인 공간도 부족하죠. 사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님도 적어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많지 않고 학령인구가 끊임없이 줄고 있지만, 그만큼 서로의 아이와 가족을 잘 아는 이곳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태원과 가까운 특수한 위치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편견 없이 타인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실제 김 매니저의 아이가 다니고 있는 지역 초등학교의 전교생은 120명이 채 되지 않지만 20여 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초·중·고등학교들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해보는 것 역시 이들의 사업계획 중 하나다.

지역 주민들과 만든 두 권의 책. 도서 발행으로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온지곤지의 목표다.
도심 속의 특별한 여행지, 해방촌
온지곤지 협동조합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김현식 매니저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키워드는 ‘여행’이다.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의 눈에 이곳은 결국 일종의 여행지예요. 그래서 우리 책방에서 ‘북스테이’를 해볼까 합니다. 보통 도시 사람들이 조용한 책방에 가서 북스테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거꾸로 도심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려고 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과는 다른 이곳이 거꾸로 서울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거든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해방촌에 묵으면서 용산구에 흩어져 있는 여행지를 돌아볼 수 있는 코스도 고려하고 있다. 김 매니저가 생각하는 여행의 동반자는 외지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아이들과 해방촌 골목 탐방을 하면서 소중한 공간들을 찾아보는 보물찾기를 해보려고 해요. 바로 위에 소월길이 있으니 김소월 시인의 시를 읽고 소월길을 걸어볼 예정입니다.”
“아직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도 CRC의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오히려 제약이 있는 부분도 있죠. 그렇지만 도시재생을 하고, 그 지역에서 오래 살려면 거점을 유지하며 활동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과의 협력이 꼭 필요하고 CRC라는 모델이 중요합니다.” 낙후된 시설이나 오래된 의제들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과 애정으로 지역이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와 공존하는 법을 찾고자 하는 온지곤지 협동조합의 다음 행보는 그만큼 자유롭고, 지역 주민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것이다.
온지곤지 협동조합
사업지 해방촌 설립일 2018. 12. 21 조합원 5명 CRC 선정일 2019. 12.05 CRC 유형 ☑지역사업형 □지역관리형 업종 교육 서비스, 도서 소매 주요 사업 지역 아동 및 학부모 교육, 출판 및 상품 제작, 아카이빙
해결하고자 하는 지역 문제 지역 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존중 없이 TV에 나온 맛집만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해방촌의 새로운 지역 문제
해결방법 지역과 지역민들의 스토리를 담은 책을 지역 상품으로 만들고, 주민협의체 마을규약을 제정하여 지역을 방문하거나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에게 지역을 존중할 수 있는 생태를 만들고자 한다.